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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소관

2016-03-30

졸업작품 전시회에 결국 나는 사이비 동양철학을 주제로 한 작품을 내게 될 것 같다. 재미있는 주제다. 동양철학을 전공한다는 이유만으로 지겹도록 들어왔던 수많은 오해와 선입견을 정면으로 다루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공 관련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인 "내 사주도 볼 줄 아니?" 이 말이 참 허탈하고 어이가 없어 웃기기도 했는데 결국 나는 디자인 졸작으로 음양오행과 사주팔자를 파고 있다... 그리고 더 어이없는 건 이것이 조사하면 할수록 너무 재밌다는 것이다. 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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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소관이라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 팔자에 의해 운명적으로 겪게 된다는 일들 말이다. 초년운과 중년운, 말년운. 타고난 재물복과 배우자복, 사업운 같은 것들. 결국 동물의 등껍질에 금을 내어 나라의 흥망성쇠를 점치던 시절에서부터 이어져 온 고대의 술법 아닌가 하면서도 살면서 겪은 일들을 하나씩 끼워 맞춰 보다 보면, 아주 틀린 말 같지도 않다.

일찍 철이 들었던 이유도 길흉을 시도 때도 없이 넘나드는 집안의 재물복 때문이었고, 배우자의 운명과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삶의 모양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던 것도 집안 사람들의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관계 때문이었다.

늘 정해진 운명에 집어삼켜지지 않으리라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삶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감각과 싸우면서도, 역경의 대물림에서 적어도 나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버틴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잘 풀리지 않는 일들 앞에서는 원래 그런 것이려니 하며 쉽게 손을 놓아버리기도 했다. 불순한 합리화? 타당한 체념? 둘 중 무엇이든, 어차피 다 정해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하리만큼 편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아주 조금은 팔자소관이라는 말을 믿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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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그가 입은 옷을, 그가 다녀온 여행지를, 그가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는 모든 것들을 지켜본다. 부러운 기분을 매우 싫어하는데, 어쩔 수 없이 부럽다. 나는 일주일에 40시간을 시급 아르바이트에 쏟아붓고, 자취방을 얻을 여유가 없어 하루 세 시간씩 통학을 하며, 과제를 하기 위해 4,500원짜리 커피를 사 들고 냉난방도 되지 않는 24시간 카페에서 밤을 꼬박 새운다. 최소한의 수면을 챙기라는 말도, 효율을 생각하라는 말도 사치스럽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일과 수업과 과제를 동시에 병행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맛있는 거 먹는 것이 그나마 가장 편히 누릴 수 있는 위안거리여서, 어쩌다 고단한 하루를 견디는 치트키로 안주에 술이라도 곁들일 때면 "그거 아껴서 차라리 여행을 가지" 같은 소리를 듣곤 했다. 누군가는 대학생 때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며 아르바이트를 하지 말라고도 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긍정하면서도 속에서는 부아가 치밀었다. 나는 시간을 아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한 시간을 시급 6천 원으로 바꾸며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가끔은 많이 억울하고, 가끔은 내가 대견하고, 가끔은 인생시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가끔은 나보다 더 불행한 자도 있다는 고상한 어리석음에 취하고, 가끔은 이런 생활에 만족하지만,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은 족같다. 족같다? 그 말로 끝내고 싶지 않네. 아주 개씹팔염병 같은 생활이다. 더 엿같은 건, 이게 너무 익숙해져서 뭐가 진짜로 불행한 건지, 뭐가 진짜로 소중하고 중요한 건지 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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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런 막연한 우울이 사치스럽다고, 그래서 니가 진짜로 한 건 뭐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공부한 것에 따르면 그런 성격 역시 팔자소관이란다. 긍정적인 사람도 타고나고, 음습한 사람도 타고난다. 하지만 또 꾸준한 수양과 노력을 통해 그 팔자에서 벗어나야 한단다. 이쯤 되면 조금 어이가 없다. 모든 게 타고나는 거라면서 결국은 또 니가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 아닌가. 대체 뭘 어쩌라는 건가 싶다.

주어진 상황을 타개하려는 끊임없는 자기 수양. 이것이 바로 유학에서 말하는 수기치인, 즉 덕(德)이다. 그런데 나는 이게 너무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거지. 요순 같은 성왕 이야기까지 끌고 와 가며 인간은 마땅히 수양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결국 통치계급이 만들어낸 지배 이데올로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불경한 의심도 든다. 니네들 불행한 거, 그거 다 니네 탓이거든? 타고나길 미물로 태어났는데 수양마저 부족하면 어쩌자는 거니 어휴! 라고 세뇌시키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팔자소관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 너는 원래 이런 사람이고, 원래 이런 삶을 타고났으니 어쩌겠니. 조금이라도 덜 불행하려면 그냥 조용히 찌그러져서 열심히 살으렴.. 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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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갑자기 내 불행에 젖어서 조금 흥분을 했네. 욕도 조금 했네. 사실 난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다. 그냥 밤새 과제를 하다가 싱숭생숭해졌을 뿐이다. 허나 긍정적이지 않은 건 확실히 맞는 거 같다. 도저히 내가 처한 이 상황들이 행복하다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 그래, 나는 타고나기를 이런 인간인 것이다. 어쩌라고 인생아 하고 가운데 손가락을 날려주고 싶군.

각설하고, 나는 어떻게든 지질하게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지랄맞은 그놈의 사주팔자에 따르면 이 궁상맞은 초년의 시간들은 결국 흘러 지나갈 것이고, 어쨌든 덤덤히 잊힐 것이고, 그러다가 중년에 들어섰을 때 나는 조금씩 길이 트일 테니까.

우습지만, 나는 그 말을 은근히 믿고 있다. 이런 사소한 희망이라도 지니라고 팔자라는 것이 생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2016년은 말띠에겐 삼재가 시작되는 들삼재 해이니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내게는 꽤 중요한 해라고 생각했는데 12년의 악운이 압축된 3년이 시작되는 해라니. 하하하 이 글을 읽는 말띠, 범띠, 개띠는 다들 조심하시고 언제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나 정말 사이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