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
2020-07-21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11살, 만으로 9살. 나는 학교 복도에서 유치한 장난을 치는 애새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오랜 수행 끝 달관한 고승처럼 '더 이상 나는 정신적으로 성장할 데가 없는 경지에 다다랐다=다 컸다'라고 혼자 깨달아버리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는 이 감정을 오래 잊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 아닌 다짐을 했었는데.
그래선지 이맘때의 다른 모든 사건들은 흐릿한 반면 이 순간의 생경함만이 아직도 선명하다. 갑자기 세상 모든 게 명료하고 우스워지며 한데 엉켜 뛰어노는 아이들의 동세가 슬로모션으로 보이던, 그 찰나의 깨달음. 대충 사회과학적 지식이야 살면서 더 쌓겠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이해하는 정도는 지금이나 성인이 된 후나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물론 그 후로 인생의 빅 깨달음을 새롭게 얻을 때마다 11살의 나를 재소환하며 그때의 셀프 해탈이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조숙했던 어린이의 치기였으리라 치부하고 넘어갔지만, 순간의 감정만은 선연하게 남았고, 그 후로 20여 년을 더 살면서 다시는 비슷한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너무나도 다른 인격체 같다. 초4.. 아무리 득도해봤자 학교 화장실에서 똥 싼 걸 들키는 게 세상 최고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던 때가 아닌가? 31살의 나는 아직도 똥 얘기나 하면서 더 큰 정신적 성장을 꿈꾸는데 말이야. 아무튼 당시 나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왕따 문제나 학업 관련이 아닌 '어른의 세계로 입문한 내가 어린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다 까먹어버리면 어떡하지'라는 다소 재수 없는 실존적 의문이었다.
사실 어렸을 때 나는 싫은 걸 싫다, 좋은 걸 좋다고 똑 부러지게 말하는 게 어려웠다. 정확히는 뭘 정말로 좋아하는지 감이 안 왔다. 또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유해도 되는 건지,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부해도 되는 건지 가치 판단이 잘 안 섰다. 눈치를 많이 보고 남을 배려하는 성향 탓도 있을 거다. 안타깝게도 내 부모는 숨겨진 나의 의사를 정확하게 캐치한 적이 드물었고 때문에 은근히 서운하거나, 서운함을 넘어 한이 되어버린 순간도 존재한다. (지금 와서 엄마와 그때 얘기를 하면, 반대로 엄마는 내가 뭘 원하는지 몰라서 속 터질 때가 많았다고)
"너는 진짜 그런 게 좋냐?" "너는 그런 게 정말 맛이 있냐?" 이게 아빠의 디폴트 말투였고, 나는 자연스럽게 '진짜 어른이 되면 어릴 때의 감성을 이해할 수조차 없게 다 까먹나 보다' 하고 '개인의 몰이해'를 '세대 간의 격차'로 오독해 버렸다. 동시에 '어른이 되어도 나는 잊지 말아야지. 언제나 똑같이 기억하고 이해해야지. 절대 동떨어진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라고 굳게 다짐하기도 하면서.
다시 초4의 고민으로 돌아가서. 이런 고민을 위해 딱히 내가 노력한 건 없다. 쓸데없이 기억력이 비상하던 그때는 미래의 내가 대부분의 경험을 통째로 망각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을뿐더러, 늙음에 대한 자각도 없었으니까. 올림피아드, 경시대회, 내신과 수행, 외고 입시, 재수 삼수, 그리고 대입까지 그저 잘 짜인 하나의 인생 각본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청소년기 뺑이를 치는 동안 이런 고민은 저기 저 추억 상자 속 이야깃거리 1로 변모했고, 그러는 사이에 동심을 간직하기엔 이미 글러버린, 머릿속에 있는 거라곤 유흥과 물질, 연애 수치의 역사밖에 안 남은 다소 한심한 어른이 되어있었다.
어느덧 장황해진 이 이야기의 요는, 내가 근래 초딩들의 성지이자 최고의 오락거리라는 틱톡을 다운받았고, 호기심에 시작한 이 어플이 어느새 초강력 길티 플레저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으며, 초딩 혹은 유사초딩들의 댓글을 읽고 있노라면 아주 별천지 저 다른 세상이라는 것이다. 개인적 감상을 남긴 댓글이 반말이라 심기가 상했는지 "죄송한데 은반하지 말아주세여ㅠㅠ"라는 십 대 크리에이터의 대댓글을 보고 쓰는 글 맞다.
이 친구들을 나는 어느 선까지 이해하고 있을까. 말 그대로 별걸 다 줄이는 세상에서 아직도 사전적 어휘의 적확한 사용이 더 큰 가치가 있음을 주창하는 나는.. 훗날 그들에게 나의 글은 트위터 맥락망 중장년의 뜬금없는 정치 공격처럼 느껴지진 않을까?
롬곡옾눞이다 증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