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게 있는데
2020-06-05
다들 자기혐오의 수준이 심해질 때 어떻게 하시나요. 나의 오랜 병폐. 고질적인 이 해로운 감정이 언제쯤 건강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보통은 부정적인 감정을 잊기 위해 잡박하기 그지없는 자극을 찾곤 하죠. 빠르게 리젠되는 커뮤니티 글을 훑거나 140자 단위로 주제가 휙휙 바뀌는 트위터, 또는 인스타, 또는 궁금하지도 않은 요상하고 추접스러운 영상을 찾아보며 유튜브 알고리즘을 혼란케 하는 일들.. 이것도 아니면 불안을 글로 남기기도 합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자극성 도피는 무엇이 정말로 문제인지를 늘 잊게 만들어요. 내 문제를 각 잡고 마주하기 전에 세상의 흉흉함에 치를 떨어버리거나(트위터) 바보 천치 같은 인류를 보며 인류애를 깎아먹거나(페이스북) 예쁘고 귀엽고 옷 잘 입고 잘생겨서 팔로했더니 '그 사람'은 없고 자본주의 마케팅의 헛헛함만이 남는 식이죠.(인스타)
자리에 누워서 내 잘못들을 나열합니다. 도통 나아지지 않는 어떤 현상들에 의문을 갖기도 하면서요. 가끔은 초월적 존재에 의해 이게 이미 다 짜인 판이 아닌가, 나는 이미 망해버린 패처럼 저기 저 부루마블 무인도에 갇혀서 주사위의 더블만 기다리는 게 아닐는지 하는 상상도 합니다. 엄마의 슬픔, 아빠의 고됨, 형제의 철없음을 떠올리고 한숨도 쉬고요. 나만 좋아해 주는 아픈 반려견도 쓰다듬어 보고요. 인간은 도대체가 뭔지, 이 끝없는 의문은 어디에서 오는지, 내 모든 불행이 결국 내가 믿음이 없어서 생긴 게 아닐까, 오늘 아침에 읽은 인류 기원과 초고대문명에 대한 글도 떠올려보고요. 차라리 내가 뭔가를 쉽게 믿어버렸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습니다. 미스터리 공포 무당 영혼 이런 거 나 되게 좋아하거든요. 차라리 비루한 내 일상마저도 사실은 신의 계획대로 흐르는 거였으면 싶을 때가 있다는 겁니다. 아마도 또렷하고 구체적인 삶의 방향과 의미가 없기 때문이겠죠. 얼마 전 헤어진 남자친구가 했던 말도 기억나네요. 내가 정확히 무얼 원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나는 아이를 무척 좋아하는데요, 요즘 내 나이를 직시하면서부터는 결혼 비혼 뭐 이런 것보다 출산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나한테서 내가 꿈꾸던 모습이 잘 보이지 않기 시작하면서, 어쩌면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일이 출산과 육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 거예요. 어쩌면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건 아닐까요.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난 이유가 분명 있을 건데, 다들 그렇게 말했는데, 나도 한때는 엄마나 아빠의 '우주'였는데. 삶은 사실 거창하지 않거든요. 딱히 숭고하거나 거룩하지도 않고요. 그러다가 갑자기 뭔가에 꽂힌 듯이 엄마가 되고 싶은 거예요. 아이가 내 자아를 확충해주리라 믿으면서요.
그냥 조금만 더 나은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문제와 문제의 해답과 지금 당장 내가 뭘 해야 하는지도 사실은 다 알고 있어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당장 쓰던 글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아서요.
끝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용기입니다. 모두들 용기를 빕니다. 평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