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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2020-05-28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늘 우리 곁에 머무를 수만은 없다. 다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추출해낸 기억의 일부가, 지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이다.

허진호의 봄날은 간다를 처음 본 2012년, 대학교 2학년, 연애 사랑 인간관 모두 풋내나던 그 시절. 영화를 보고 분명 무언가가 가슴을 먹먹하게 울리는데 표현할 길이 없었던 당시의 내가 다른 이의 리뷰를 읽고 읽고 또 읽다가 제일 마음에 드는 구절이라 적어놓았던 문장. 그걸 다이어리에서 찾았다.

당시 몰두하던 연애를 어설프게 망쳐버린 뒤, 다친 마음이 회복이 안 되고 관계를 쌓는 게 어렵게만 느껴져 홀로 영화만 주구장창 보던 때였는데. 그때 적어놓았던 전투적인 고뇌가 지금 보니 어설프고 서툴고. 스스로 아프지 않으려 방어전을 펼치며 애를 쓴 게 적나라하게 보여서. 허 참 허 참~~ 나의 회피형 히스토리의 기원이 되시겠다? 허참~

바보같게도 이때를 계기로 나는 다시는 누군가에게 애정을 몰빵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고, 관계가 귀찮고 어렵고 피하고 싶어질 때 정면으로 대응하며 돌파하지 못했고, 언제나 한쪽 발을 뺄 준비를 한 채 무언가를 시작하곤 했다.

하나의 정해진 답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의 어려움과, 파악할 길 없는 상대의 속마음 같은 것들. 너가 어려서 그렇다, 초짜라 그렇다, 더 좋아하면 관계 속 주도권을 잃는다는 류의 말들. 그렇게 영화 속 상우에게 이입되던 내가 어느덧 은수에 이입되는 때가 와버린 것 같은데.

모와의 어쩌면 진짜 마지막이 될 대화에서 나는, 우리가 함께한 기억 일부가 훗날 네가 살아가며 마주칠 힘든 날들 속에 작은 등불처럼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뭐 우리 관계에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고. 그저 한때는 너도 꽤 사랑받았고, 또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정도로. 그거면 됐다고.

나도 모르게 염병할 영화 리뷰 같은 소리를 하구 끝을 내버렸네.

헤어진 애인 걱정하는 거 그래 그거 세상 쓸데없는 거 나도 아는데. 그래도 나는 쓰잘데없이 섬세해가지구 말이야 8년 전 그때 생긴 스크래치를 오늘에 와서야 보듬고 받아들이고 있잖아.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너가 다음 관계를 용기 있게 잘 시작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