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잠이 오지 않는다. 밀린 웹툰도 보고 트위터도 읽고 잘 확인하지 않는 인스타그램까지 다 훑으며 나는 왠지 꼬박 깨어 있었다. 제대로 잠에 취하지 않았을 때의 증상을 안다. 일단 몸이 저릿저릿하다. 자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무색하게 뚜렷이 깨어있는 뇌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알이 뻐근하다. 그래도 고집스레 스마트폰을 쥐고 아무 웹툰이나 정주행을 하다보면 난 이내 잠이 들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글렀다. 이상하다.
2.
오랜만에 이상한 기분이 들어 글을 쓴다. 참 오래도록 글 쓰기를 하지 않았다. 지난 학기 문화예술학입문 수업에서 답사 후기 따위를 적을 때가 마지막이었으려나. 보고용 글을 제외하고 텀블러나 블로그, 카페 등에 글을 남긴지는 일년도 더 지났다. 내 글쓰기는 확실히 퇴화했다. 증거는 확실하다. 지금처럼 번호를 임의로 나누고, 문단을 구분하지 않으면 난 긴 글을 쓰지 못한다.
3.
인간의 학습과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의 회백질에는 ‘맥락틈새’라는 아주 미세한 사이공간이 있는데, 바로 이 공간의 개폐여부가 한 인간의 문장력을 결정짓는다고 한다. 즉, 문단과 문단을 매끈하게 연결하는 능력이 고작 1.5세제곱센티미터의 부피를 가진 해마 속 미세한 공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18세기 저명한 물리학자였던 벤자민 프랭클린이 두개골을 쪼개어 맥락틈새 개통술을 받음으로써 정치, 외교권의 선구자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해마의 기능이 망가지며 발생하는 알츠하이머성 치매나 간질은, 사실 맥락틈새가 닫히는 비극에서 시작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문장을 허물없이 구사함에 있어 어려움을 느끼거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혀끝에서 맴도는 것, 우리의 어머니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이 자연스런 현상이 곧 맥락틈새가 닫혀버렸다는 표식이자, 해마 기능 장애의 완벽한 초기증상 중 하나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글쓰기 퇴화는 아마 이 고약한 틈새가 서서히 닫히고 있다는 확실한 증표가 아닐까.
4.
사실 3번 문단은 전부 내가 지어낸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거짓 보다는 차라리 구라에 가깝다. 구---라. 저런 구라를 능청맞게 써내려간 까닭은 요즘 읽고 있는 소설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김언수 작가의 <캐비닛>에서는 이런 구라가 적어도 100가지는 넘게 나온다구. 알면서 속아주는 기분이 이토록 괜찮은 건 드문 일이다.
5.
잠이 오지 않아서 양을 세려다가, 영어권 국가에서 양(Sheep)의 발음이 잠(Sleep)과 비슷한 데서 오는 유사효과이기 때문에 한글로 양을 세는 것은 부질없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우리말로는 ‘잠자리’를 세는 게 훨씬 효과가 있다나? 그래, 한 번 세어나 보자, 잠자리 한 마리, 잠자리 두 마리, 잠자리 세 마리..
그런데 말이다. 잠자리는 모기의 완벽한 천적으로, 유충일 때는 모기 유충인 장구벌레를 3,000마리 정도 잡아 먹고 성충이 되면 모기를 한 마리당 1,200~2,000마리 씩 잡아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잠자리의 날개를 인간의 손가락으로 잡으면 그 온도를 못이겨 날개가 녹아버린단다. 때문에 모기가 싫은 당신이라면 적어도 잠자리의 날개를 두 손가락으로 쥐는 무식한 짓은 하면 안 된다는 말씀.
6.
아까 3번 문단에서 속은 여러분은 방금 이 말도 구라가 아닐까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저건 거짓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 여부는 나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건 내가 즐겨보는 김양수 작가의 웹툰 <생활의 참견>의 지난 주 베스트댓글에 적힌 내용이었으니까.
7.
잠이 안 와서 잠자리를 세던 나는 결국 매일 밤 잠을 청하기 위해 보던 웹툰의 베댓으로 회귀하며 더욱 더 똘망똘망한 정신을 갖게 되었고, 이 사실이 문득 우스워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난 주의 베댓을 기억하는 내가 살짝 대견하기도 했다. 참 쓸데없는 글인 것 같지만, 맥락틈새가 거의 닫혀버린 26세의 이지수가 쓰기엔 이정도도 아주 우수하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오랜만의 글쓰기, 끝!